SHE & HE
SHE
그에게 이제 더이상 들어 갈 자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빈 곳의 부피감에 서늘함을 넘어서 나를 점점 이끌어 가고 있다.
샤워를 끝내고 돌아왔었다. 침대에 벗어져 있던 그의 외투가 없었다. 예고했던 불안함이 당연한 것이라 여겼지만 그것이 실체가 되자 인정하기 싫음에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문을 열고 내내 공허한 공기의 부피감을 알리는 계단의 발자국 소리를 체험하면서 호텔 로비로 내려왔다. 사람들이 몰려서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하는 마음에 사람들을 헤치며 다가섰다. 다행이었을까 오히려 그가 그곳에 쓰러져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불행히도 그는 그 곳에 누워있지 않았다.
더이상 발걸음을 뗄 자신이 없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 간 방 안에 그의 신발이 보였다. 다시 나의 얼굴에 희색이 도는 것을 느꼈다. 대수롭지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며 거실로 들어 오는 나를 지켜보던 그의 모습에서 나는 안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항상 나의 부재를 갈구하는 그이기를 알기에 슬프게 만들었던 그 눈빛이 이제 안정감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에게 급하게 다가온 행복이 지금까지와의 나와 너무 이질적이어서 오히려 스스로를 불행하게(슬픔이 아닌) 만든다는 것을 알 것 같다. 슬픔과 함께 했을 때의 불행하지 않음이란...
HE
여자는 불확실해야 한다.
에이미는 우연처럼 다가왔었다. 난 그래서 그 순간 그녀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그녀는 나에게 불행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많은 요소를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지금 상당히 불안하다. 시작은 에이미가 나의 집에서 오고 난 뒤였다. 하루가 지나서 그저 아침 식사를 만들어 주던 그녀가 일주일이 지나자 자신의 옷을 챙겨오기 시작했다. 한 달이 되자 이제 모든 것이 쌍을 이루게 되었다. 상시 대기 중인 두 켤레의 구두, 두 켤레의 실내화, 두 개의 칫솔, 두 개의 베게, 이것은 정말 끔찍하다.
이것은 단지 그녀가 나의 생활에 포함되어서의 문제가 아니다. 그녀는 이제 더이상 불확실한 존재가 아닌 것이다. 나에 대한 끊임 없는 의심으로 고통 받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그녀의 정체성에 있어서 커다란 영역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사랑한다는 뇌의 행위는 더이상의 진행을 멈추게 하고 있다.
그녀가 순간적으로 부재하기를 원한다. 영원히 부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저렇게 아름다운 그녀가 고통 받는 것을 상상하는 것을 견디는 것은 내 일생에 짐이 될 것이다. 그녀가 아름답지만 않았더라면... 어쨌든 현재의 내 곁에 있는 아름다움에 반대되는 다른 가치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
그녀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시체놀이를 하자고 말했다. 나는 갑자기 외쳤다. "쓰러져"
쿵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바닥에 쓰러졌다. 그 둔탁함에 나도 모르게 불안했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죽은 듯한 표정에서 나는 부재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없다. 그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없었다라는 말은 존재할 수 없다